모로코의 옛 수도 페즈(Fès)는 수백 년 전부터 지중해와 사하라를 연결하는 중심 도시로, 이슬람 문화와 아랍, 베르베르 전통이 공존하는 가장 진한 모로코의 원형을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특히 페즈의 메디나는 미로 같은 골목과 고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 시장, 그리고 장인의 작업장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마치 시간의 틈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페즈 메디나의 구조, 추천 시장 코스, 가죽 염색장(타너리), 장인의 공방,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진짜 모로코의 풍경을 여행자 시점에서 상세히 소개합니다. 감성 여행자, 문화 탐방가 모두에게 흡인력 있는 여행지로 안내드립니다.
페즈, 시간의 틈에서 만나는 진짜 모로코
모로코를 여행하다 보면 익숙한 유럽식 풍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페즈는 그중에서도 가장 이국적이면서도 진정한 ‘모로코’를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은 마치 중세가 그대로 보존된 공간처럼 느껴지며, 몇 백 년 전 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을 오늘도 여전히 현지인과 여행자가 함께 걷습니다. 특히 ‘페즈 엘 발리(Fès el-Bali)’로 불리는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도시 전체가 거대한 미로 같고, 골목 하나하나가 고유한 이야기와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메디나의 입구를 통과하면 자동차도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지며, 손수레를 끄는 상인과 당나귀가 지나가는 좁은 통로, 아치형 석문 너머로 드러나는 색색의 천과 도자기, 향신료의 진한 향과 피라미드처럼 쌓인 말린 과일들과 모든 것이 어지럽고 복잡하면서도 정돈된 질서를 갖춘 풍경입니다. 처음에는 길을 잃은 듯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혼란 속에도 나름의 리듬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멈춘 도시'라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현대식 간판도, 번쩍이는 간판도 없으며, 대신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전통 가구, 손으로 빚은 도자기, 염료 냄새 짙은 가죽 제품들이 일상처럼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여행자는 자연스레 오늘의 삶과 수백 년 전의 생활이 겹쳐지는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페즈의 골목 여행이 가지는 독보적인 매력입니다.
전통시장과 장인의 손길 메디나 골목
페즈 메디나의 핵심은 '시장'입니다. 시장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하나의 살아있는 문화 공간입니다. 가장 유명한 전통 시장 중 하나는 **타라구인 거리(Tala’a Kebira)**로, 양쪽으로 펼쳐진 상점과 노점에는 수백 년 전 방식 그대로 제작된 물건들이 가득하며, 은세공, 모로코 전통 의상인 젤라바(Jellaba), 수공예 가죽 샌들, 양탄자, 그리고 각종 도자기와 향신료 등 그 품목이 매우 다양합니다. 시장 한복판에서 가장 강한 시각적, 후각적 자극을 주는 곳은 단연 **가죽 염색장(타너리, Chouara Tannery)**입니다.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진 수십 개의 염색통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장인들이 소금과 천연염료를 사용해 가죽을 직접 손질하고 염색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강한 냄새 때문에 민트잎을 손에 들고 둘러보는 관광객도 많지만, 그만큼 생생한 전통의 현장을 마주하는 특별한 순간입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곳곳에 장인의 공방이 숨어 있습니다. 도자기를 빚는 작업장, 황동 트레이를 조각하는 장인의 손놀림, 복잡한 무늬를 세공하는 나무 공예가의 집중하는 눈빛, 이 모든 과정이 대량생산이 아닌, 시간을 들여 손으로 만들어지는 장면입니다. 페즈는 그런 수작업의 집약체이며, ‘속도’보다는 ‘깊이’로 완성된 도시입니다. 시장 곳곳에는 전통 찻집도 많이 있으며, 민트티 한 잔을 마시며, 향신료와 낙타 가죽, 햇살이 뒤섞인 공기를 마시는 것입니다. 이 역시 페즈 여행의 중요한 기억 중 하나이며, 무언가를 보기보다, 그 속에 스며드는 여행. 그것이 바로 이 도시의 진짜 방식입니다.
과거를 걷는 법, 페즈가 알려준다
페즈의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시간을 잊게 됩니다. 스마트폰의 GPS는 미로 같은 메디나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길을 물어보며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일이 다시 익숙해집니다. 이렇게 ‘길을 잃어야만’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장면들이 이곳에는 있습니다.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서 수공예 작업을 구경하거나, 고요한 이슬람 학교(마드라사) 안마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하나의 깊은 경험으로 남으며, 페즈는 스펙터클한 풍경이 아니라, ‘결’로 기억되는 도시다. 골목마다 다르게 깔리는 햇살, 벽의 색감, 사람들의 손짓, 말투, 그리고 시장에서 나는 수많은 소리들, 이런 모든 조각들이 쌓여 여행자 안에 오래도록 흔들림 없이 남습니다. 그래서 페즈는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더 선명하게 기억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만약 당신이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그리고 그 안에 문화와 전통, 삶이 살아있는 공간에서 걷고 싶다면, 모로코의 페즈는 반드시 머물러야 할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지 않고, 조용히 나란히 흐릅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는 걸 페즈가 알려줍니다.